사진=KBS
(사진=KBS)

한 해가 저물어간다. 2019년 충격적이고 한심하고 황당한 여러 지난한 일들이 많았지만 올해 국내에서 일어났던 정치, 경제, 사회 10대 뉴스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 안에 일본과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은 꼭 들어갈 것 같다. 일본은 국내 대법원의 일본기업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자 대중이 들고 일어섰다. 여름께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전범기업은 물론이고 국내 기업들이 사용하는 일본산 재료, 대형마트 일본 제품 퇴출까지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갔다.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고, 국내 여론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한일 관계가 올해와 같은 모습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한일 간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나오는 한편 오히려 한국과 일본의 오랜 역사와 그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자세히 알아야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2011년 출간된 ‘일본에 고(告)함’이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으로 재출간된 것도 이같은 이유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은 2000년 전부터 이웃 나라로서 이어져 온 한국과 일본의 인연과 적대, 대결과 변화, 공존의 해법 등을 다룬 책이다.

■ 객관적 시각을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이 책의 저자이자 2010년 국권침탈 100년을 꾸려진 KBS특별역사다큐 ‘한국과 일본’ 5부작 제작 프로듀서인 김종석 PD는 보다 객관적으로 한일관계를 짚기 위해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으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같은 기획을 했다고 고백한다.

“한국사람이기에 객관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긴 했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어요.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 특정시기만 한정할 경우엔 더더욱 객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인연은 1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왔습니다. 이 시간 속에서 한일관계를 다루면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죠. 넓고 긴 시야로 바라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김 PD와 다큐 제작팀은 한국과 일본의 아주 오래 전 역사부터 훑어 내려갔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있던 한반도와 열도는 약탈과 중국대륙의 개입 등 요인으로 관계가 악화됐다 좋아졌다를 반복한다. 양국의 역사를 살피던 김 PD는 양국이 처음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된 시기를 고려시대라고 말한다. 고려시대 원나라가 간섭을 하던 시기, 원나라가 고려에 일본 침공을 강요했고, 이에 고려가 두 차례 일본에 무기를 들이댄다. 현재 일본 쓰시마 등에 고려시대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김 PD 설명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자신의 땅을 침략한 고려인들을 원나라의 침략 무리들이라는 뜻에서 ‘원구’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그들을 왜구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후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는 일본 왜구들이 한반도로 여러 차례 침략을 해오고 약탈, 방화, 살인 등을 저질렀다고.

재밌는 점은 고려시대, 침략의 흔적이 세계2차대전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PD는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을 당시 태풍이 불어 발길을 되돌린 적이 있어요”라면서 “일본 사람들은 그걸 신이 불러 일으킨 바람이라고 믿었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이 패전을 앞두고 이 신의 바람을 다시 불러 일으키자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렇게 꾸려진 게 가미카제 특공대예요. 한자로 신풍, 신의 바람이란 뜻이죠”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우리가 그간 한일관계를 단순히 생각해왔던 듯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한일관계를 악연으로 여기고,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와 결부시켜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부터 한일관계의 적대 역사가 진행됐고 이 가운데 공존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김 PD는 일본이 섬나라라는 특징을 짚으며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품이 한정된 상황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 애썼다는 점을 언급했다. 왜구들은 가장 폭력적 형태인 전쟁과 침략, 약탈로 자국의 결핍을 채우려 했다. 다만 한반도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왜구라는 일본 해적을 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포, 염포, 부산포에 왜관을 설치해 공존의 길을 선택했다. 제한적 교역을 허락하고 불경과 선진문물을 전해주며 평화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공존의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 위협적일수록 교류하라

그러나 단순히 교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일본이란 나라의 위협 요소들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종종 한국을 향한 화살이 됐기 때문이다. 올해 늦은 봄,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단순히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한국이라는 적대 상대를 만들었다는 지론이 있었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임진왜란이기도 하다. 김 PD역시 “일본은 외부나 내부에서 위협을 느끼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침략을 선택했어요. 제일 만만한 나라가 조선이었죠”라면서 “임진왜란 직전 일본은 전국시대였고 근 백년을 치열하게 싸웠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하고 나니 조총이란 무기도 많고 병사도 많은 상황이었어요.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다툼은 또 일어날테고 자신의 반대세력도 들고 일어날 것이란 생각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권안정을 위해 임진왜란을 시작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예로부터 일본의 어떤 의도와 목적에 의해 한반도가 휘청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셈이다. 그러나 김 PD는 이처럼 괴로운 고난의 역사에 우리가 반성할 부분도 분명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반성할 부분이 없을까? 저는 있다고 봅니다. 일본인들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알기 위한 노력을 했을까 하는 점요. 이번에 일본의 도발이나 경제 전쟁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대부분 국민들은 일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아베가 왜 저런 짓을 할까 몰랐을 거예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죠. 긴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한국과 일본은 늘 공존과 적대 관계가 교차돼왔습니다. 단적인 예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통신사를 보내 일본에 소위 한류바람을 일으키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죠. 일본이란 나라는 완전한 적대로만 해결이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한일관계를 가장 잘 다뤘다고 평가받는 책이 신숙주의 ‘해동제국’인데 신숙주가 유언으로 ‘일본과 평화를 잃으면 안된다’는 말을 남겼어요. 위협적 존재라고 느낄수록 교류를 위한 노력을 멈추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교류를 해야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나라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알아야 당하지 않습니다. 사람 간 관계부터 문화와 연대, 우호와 친밀관계는 교류를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 일본에게 또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쪽이 물러선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위협적일수록 교류하라’는 신숙주의 말은 지금 시점에서 역시 새겨들어도 좋을 말이다. 김 PD 말처럼 알아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조선 강제 병합과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던 19세기 정한론자 후손들이 아베총리를 비롯한 극우세력이라는 점도 이들이 어째서 여전히 일제강점기 시절의 만행을 극도로 부정하며 도발을 멈추지 않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1948년 도쿄 전범재판서 면죄부를 받은 세력이 여전히 일본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교류라 함은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굽히고 들어가거나 모든 걸 내어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2011년, 일본은 독도 도발로 한국을 불쾌하게 했지만 그 해 한국은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을 자원봉사와 성금 등 도움의 손길로 도왔다. 왜구의 폭력을 교역으로 풀고,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억지를 휴머니즘으로 풀어낸 한국. 어쩌면 한국의 이런 점이야말로 일본을 어찌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마냥 밉다, 마냥 손을 내밀어야 한다가 아닌 지리적 요인에 숙명처럼 얽힌 한일 관계를 풀어낸 해법을, 한일관계악화로 떠들썩했던 이 해를 보내며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