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쌤앤파커스
(사진=쌤앤파커스)

작가는 무릇 오랜 시간 취재를 하거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한권의 책을 펴낸다. 일정하게 몇 년 주기로 책을 내는 작가도 있지만 수년, 혹은 십년의 세월을 지나서야 신간을 내놓는 작가도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통상 작가의 창작 고통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다고들 한다. 10개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다 세상에 내어놓는 어머니의 고통과 비교되곤 하지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오랜 시간 수반된다는 점에선 어쩌면 작가의 작품 산통이 더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 작가만큼은 다르다. 장르와 국경은 다르지만 그를 두고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이나 책을 많이 펴냈기 때문. 바로 시대를 쓰는 작가, 김진명이다. 김진명 작가는 출판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소재를 찾아내는 야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뿐인가. 김진명 작가의 작품에는 세상의 이슈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상에 불쑥 튀어나온 요철처럼 아픈 이슈들과 함께 사회가 품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오랜 관습같은 이슈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마법처럼 정보가 소설이 되고 논란이 작품이 된다.

사진=새움
(사진=새움)

■ 야수처럼 찾아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다작

김진명 작가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처음부터 작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고, 세상에 나와서는 자기 사업을 하려다 실패했다. 그 때 찾은 꿈이 바로 작가다. 그러나 운명이었다. 그는 데뷔작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993)로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여전히 김진명이란 이름 석자에 꼭 따라다니는 수식어이기도 한 이 소설은 미국에서 활동한 실존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삶을 소재로 삼아, 그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핵무기 개발에 관련했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후로 발표한 작품들도 대부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다작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는 점 때문에 일본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장르 소설 정도로 분류될 수 없다. 그는 정치·경제·역사·외교 등 한국 사회의 민감한 주제를 소설에 끌어들이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통법을 구사하거나 어려운 언어를 쓰지도 않는다. 그는 출판업계 표현에 따르면 야수처럼 소재를 찾아내고 스스로가 폭풍이 되어 작품을 써내려간다. 구체적인 구상이나 콘티, 개요를 적어두지 않고 단번에 써내려간다는 그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소설적 기법을 찾아보긴 힘들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과 스토리적 반전으로 독자의 흥미를 높인다. 멜로드라마적 요소는 정치 문제에 접목되며 더욱 박진감 넘치는 서사의 세계를 구축한다.

사진=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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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내는 작품에도 지치지 않는 독자의 사랑, 비결은

다작품 중 대표작만 꼽아도 열손가락이 모자라다. 한국 문화재에 대한 일본의 약탈과정을 광개토대왕비에 얽힌 비밀을 중심으로 풀어낸 ‘몽유도원(원제 : 가즈오의 나라)’(1995), 1990년대 후반 IMF 금융 대란과 함께 찾아온 한국사회의 위기를 배경으로 그 정신적 극복 과정을 개인에 투영시킨 ‘하늘이여 땅이여’(1998), 故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낸 ‘1026(원제 : 한반도)’(1999),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을 꿈꾸던 고구려의 이야기를 오늘의 현실과 빗댄 ‘고구려’(2011),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을 예견한 ‘삼성 컨스피러시’(2012), 34년 전 KAL 007기 피격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언’(2017), 미·중·러·일의 이해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한반도에서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 ‘미중전쟁’(2017)등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오는 8월 1일 출간될 신간 ‘직지’는 이미 한달여 전인 7월 초부터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예약판매만으로 지난 9일 모바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4~10일 사이 인터파크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나란히 11, 1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직지로부터 나왔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역사적 사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진명 작가는 이미 60대인 그에게는 미안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그는 앞으로도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시대의 이면을 조명하고 독자로 하여금 시대의 감시자가 될 것을 주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과 정치, 경제, 사회를 막론하고 작품만큼이나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는 참으로 믿음직스럽다. 그가 시대를 써내려가는 작가로 불릴 자격이 충분한 이유다. 물론,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 그이기에 대중의 사랑도 쉬이 식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