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한국을 향해 도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일조선인 2세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와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는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에서 지난 20여년간 일본이 보인 우경화와 과거사 인식의 퇴행은 전후 민주주의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본성이라고 분석한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대화하며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등의 책을 펴냈다. 이번 책에는 지난 2016~2017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대담 내용을 담았다. 역시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춰 일본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겼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서 교수는 "과거에는 그중 하나만으로도 정권을 무너뜨릴 수많은 실정과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정권이 장기화해서, 민주 정치를 토대에서부터 파괴하는 '모럴의 붕괴'가 진행 중"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의 위협, 도쿄올림픽, 천황의 양위 등의 정치적 자원을 일본 여당과 지배층이 자기 이익 확장을 위해 철저히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천황의 '신민'이던 일본인은 패전하고서야 '국민주권'이라는 제도를 부여받아 신민에서 국민으로 바뀌었는데, 일본 국민 다수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신민'으로 회귀하려 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서 교수는 "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문제를 비롯한 식민 지배 책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전혀 과거의 것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미 일본에서는 '헤이세이' 이전 '쇼와'의 일로 사람들 의식 속에서 '과거화'돼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일본은 점점 더 세계와 일본 자신의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라고도 했다.
그는 패전 후 일본이 평화 국가로 갱생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뒤 경과를 보면 일본 사회의 '본성'은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고도, 회복 불능이라고도 할 정도"라고 우려했다.
그는 "아베 신조를 수반으로 한 정권은 전후 일본에서도 가장 오른쪽으로 치우친 매파(강경파)적 정권이며, 그 중심에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런 정권이 지금까지 6년 반이나 계속됐고, 올해 8월에는 전후 최장기 정권이 될 상황 속에서 한일 관계가 행복할 리 없다"고 덧붙였다.
다카하시 교수는 문제는 그런 정권을 계속 지지해온 사람들이 일본 국민이라는 점이라며 "거기에는 연호 변경과 천황 교체에서도 드러난 일본 제국 시대 이래의 '본성'이 존재하며, 글로벌화 속에서 하락 중인 일본의 지위와 국력에 대한 불안이 작용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