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일찌감치 실험적 시도는 있어왔지만 기술적, 비용적 문제로 인해 꽃을 피우지 못했던 오디오북 시장은 이제야 제 시대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국내 오디오북 시장 콘텐츠는 전년 대비 418%로 확대됐으며 규모를 키웠다. 세계 추세만 봐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은 연평균 두 자릿 수를 기록하며 폭풍 성장 중이다. 오디오북은 얼마나 더 성장할지, 도서시장의 희망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출판업계 인사들 대부분은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다. 그러나 오디오북이 요약본 등 형태가 다양하고 듣는 책이라는 특성을 들어 오디오북을 들었다는 것을 독서라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이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오디오북의 정체성, 그리고 오디오북 시장의 전망에 대해 들여다본다.<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 세상 모든 작가님들에게, 그들의 품위에, 그들의 고됨에, 넘볼 수 없는 존경을 표한다. (책 제목, 작가 소개) 작가의 말, 그럴듯한 문장과 서사는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읽어보시겠다면 그저 무심결에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쓸만한 인간’ 저자인 배우 박정민이 직접 낭독한 오디오북 첫 코멘트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재생된 횟수만도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15만 6445회에 이른다. 이 오디오북을 들은 이용자들은 후기를 통해 “배우 목소리가 워낙 좋아서 책으로 읽는 것과 다르게 더 잘 들리고 재미있었다” “책으로도 읽었는데 오디오는 또 색다른 느낌이다” “본인 책을 박정민 배우님이 직접 읽은 게 통했다. 배우의 목소리로 들어서 재밌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다”는 등 호평 일색이다. 특히 책으로 읽었지만 오디오북으로도 읽었다는 이들이 많았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의 경우는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메리트도 있겠지만 오디오북은 책을 좋아했던 기존의 독자와 책 읽을 시간이나 열의가 없었던 잠재 독자들을 끌어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8년 다양한 플랫폼과 오디오북 콘텐츠가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오디오북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도서를 소개할 때 작가, 출판사를 비롯해 누가 낭독했는지를 함께 표기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를 상황이다. 오디오북의 흥행에 상상력, 창의력을 더하고 책을 붙잡고 있는 시간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시각적인 미디어 및 콘텐츠가 늘어남에 따라 그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더욱더 청각적 콘텐츠의 활성화를 기대할 만하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 기술적 한계, 비용문제로 막혔던 오디오북 ‘날개 달다’

오디오북은 지난해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가 급격히 늘어나며 각광받고 있었지만 과거라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KBS 성우출신 서혜정은 36만원짜리 오디오북을 내놨다. 한국 단편소설 100선을 녹음한 CD 80장과 해설집, 장식장을 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교보문고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보문고는 2007년부터 오디오북 콘텐츠 제작에 힘써왔다. 콘텐츠를 모으는 것 뿐 아니라 성우들이나 연예인을 통해 제작했고 당시 배우 조승우가 참여한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오디오북 시장이 협소했고 관심이 있는 이도 없었기에 손해를 감수한 시범적 시도에 그쳤다. 이후 B2B (Business-to-Business·기업 간 거래)나 정액권을 판매하는 형태, 전자책 텍스트를 오디오로 변환해주는 형태로 진화했지만 각광받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8년 기업과 고객 간 거래, 즉 B2C(Business-to-Customer) 판매 형태가 성행하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분위기를 만들었다. 네이버는 2017년 KTB네트워크와 함께 300억원 규모의 오디오 콘텐츠 펀드를 만들며 오디오클립을 출시했고 2018년 국내 최대 오디오북 제작·유통업체 오디언소리를 인수, 몸집을 키웠다. 이를 비롯해 출판사 인플루엔셜이 출시한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 밀리의 서재, 팟빵 등이 오디오북에 주력하면서 보다 많은 이들이 손쉽게 오디오북을 접하고 있다. 교보문고도 출판사 미메시스와 ‘낭만서점 낭독극장’을 제작하는가 하면 원스토어와 공동 제작 투자를 통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오디오북 콘텐츠 생산을 예고한 바다.

이같은 기업들의 공격적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연 스마트폰에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오디오북을 접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오디오북 유통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보급의 통로였다. CD는 책만큼이나 번거로웠고 음원 형태 파일들도 음악 대신 담아 일일이 듣기가 어려웠다. 스마트폰은 다르다. 스마트폰은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이고 언제든 어떤 플랫폼이든 열어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 외의 기술 발전도 침체되고 외면받았던 오디오북 시장을 활성화시켰다고 말한다. 그는 “성우나 연예인을 낭독자로 섭외하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성우만 써도 원가가 안 나오는 구조였다. 지금도 연예인 및 성우를 기용하고는 있지만 그건 대표적 책들의 경우고 대부분은 AI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네이버만 해도 성우 목소리를 흉내내서 읽어주는 기술 발전 덕에 비용을 줄였다. 사실 오디오북 시장의 성장 관건은 비용이 얼마나 줄어드는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읽는다는 행위보다는 듣거나 보는 것에 익숙한 요즘 세대와 소설을 접할 시간적 여유를 따로 마련하기가 마땅치 않았던 기성 세대에 오디오북이 훌륭한 대체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역시 “오디오북은 모바일 기기와 영상 미디어에 익숙한 2030세대가 책과 친해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진단한 바다. 그런가 하면 시각적 효과에 주력해왔던 지난 세월에 지친 이들이 ‘디지털 디톡스’ 움직임 일환으로 청각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오디오북 활성화에 일조했다 분석하는 이도 적지 않다.

사진=네이버 오디오클립
(사진=네이버 오디오클립)

■ 해외의 성장세, 국내에도 희망적

다양한 이유로 성장 중인 오디오북 시장 가능성은 희망적이다. 오디언소리가 집계한 2018년 4월부터 6월까지의 오디오북 유료이용 회원수는 35만 1428명이었다. 이 수치가 2017년 동기간 대비 377%가 상승한 것이니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2019년 수치 역시 크게 뛰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2019년 기준 국내 판매 중인 오디오북만 2500여 종으로 2018년과 비교했을 때 418% 성장했다.

국내에 정확한 통계가 나온 바는 없어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해외는 한국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전자책 전문 해외 사이트인 굿이리더닷컴(GoodEReader)에 따르면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은 2013년 20억 달러(2조 3890억여원)에서 2017년 25억 달러(2조 9862억여원)로 지속적인 매출 상승을 이루고 있다.

일찌감치 CD형 오디오북이 당연하게 자리매김했던 바 있는 미국의 경우는 전자책보다 오디오북이 잘 나간다. 2018년 기분으로 전자책 판매는 3.6% 하락했고 오디오북 판매는 37.1% 성장했다. 전자책 판매율이 감소하는 것과 달리 오디오북은 매년 두 자리 성장률을 이뤄내면서 도서 시장 침체를 오디오북이 만회해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역시 영국출판협회에 따르면 오디오북 판매량이 매년 급성장 하면서 1000억원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의 대표 오디오북 사이트인 오디오북닷제이피의 경우도 2014년 10만명이었던 회원 수가 2017년 20만명, 2018년 30만명을 넘어서며 활성화된 상태다. 특히 일본 오디오북 발간부수는 국내의 9배가 넘는 2만 여 종이 넘고 아예 종이책 없이 오디오북만 출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1월 발간되는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세계 문학을 읽다’(사진=커뮤니케이션북스)
1월 발간되는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세계 문학을 읽다’(사진=커뮤니케이션북스)

■ 오디오북 시장, 풀어야 할 숙제는

해외의 성장에 발맞춘 듯 국내 오디오북 시장에서도 각종 실험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조정래 작가가 2019년 6월 출간한 ‘천년의 질문’은 출간 전인 5월부터 오디오북으로 연재하며 큰 호응을 받았다. 커뮤니케이션 북스는 이영애, 정우성, 문소리, 김혜자 등 톱배우들이 읽어주는 명작소설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세계 문학을 읽다’를 오는 15일 발행한다. 톨스토이, 디킨스, 플로베르, 릴케, 나쓰메 소세키 등 동서양 문호의 작품과 더불어 헤밍웨이, 포크너, 카뮈, 헤세 등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대표적인 단편을 엮은 100편 중 50편만 담아낸 1권의 낭독시간은 총 48시간 28분에 달한다.

다만 오디오북에 대한 우려도 함께 동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요약본으로 출시되는 사례가 잦은 오디오북의 경우 한 권의 책, 작품 세계를 온전히 느끼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기계식 음정으로 읽어주는 데 그치기보다 오디오북 안에 작품 특유의 정서를 담아내고, 어떻게 작가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를 추가할 것인가가 오디오북 시장의 과제다. 낭독의 질도 숙제 중 하나다. 오디오북을 접한 많은 이들이 TTS(Text To Speech·문자음성자동변환)의 부자연스러움을 아직도 지적하고 있다. 또 낭독 속도 역시 눈으로 책을 읽는 속도보다 느려 오히려 답답하다는 이도 있다. 다행히 TTS의 경우는 30분 정도 사람이 읽었을 때 그 발음을 추출해 전체를 사람 목소리로 읽어주는 기술이 등장했고 이 역시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희망적이다. 속도 부분은 플랫폼 자체적으로 배속 조절이 가능하게 설정한 업체들이 적지 않다. 저작권의 모호한 경계도 우려점이다. 대부분 오디오북 서비스가 TTS 기능을 활용 중인데 이 경우 국내에서는 전자책, 오디오북 저작권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미국처럼 전자책과 오디오북 저작권을 개별로 둬야 저작권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가 하면 오디오북이 급성장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인 오디오북이 종이책을 잡아먹고 종국에는 도서시장을 침체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오디오북 출시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오디오북은 도서시장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오디오북을 읽은 독자들의 경우 해당 책을 전자책이나 종이책으로 다시 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오디오북이 책을 멀리 했던 독자까지 새롭게 유입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오히려 도서 시장의 새 활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