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문아카이브)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기계처럼 정확하고 냉정하며 흔들림 없는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는 세계 일주라는 명확한 목표를 위해 세상을 둘러 보기 보다 거쳐 지나간다는 것에 기준을 뒀다. 각 나라의 사람들과 건축물과 음식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요즘의 사람들은 포그와는 다른 생각이긴 하지만 아는 곳, 이미 알려진 곳을 선호한다. 안전하고 편하고, 게다가 돌아왔을 때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곳을 선택해 간다.
그러나 세계에는 지도에 없지만 실재하는 나라들이 있다. 또 그 나라에는 각각의 사연과 남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 일일이 살펴볼 수도, 사실 이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나라들의 이야기를 국제 외교 정책 분석 전문가인 죠슈아 키팅이 '보이지 않는 국가들'을 통해 생생히 전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정부, 영토, 국민이라는 국가의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갖췄는데도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세계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라들의 실상을 파헤친다. 어느 때보다도 난민, 인권, 국경, 기후, 에너지 등 국제 이슈가 요동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국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계지도상에 존재하는 국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모습의 국가들로 이뤄지게 될지에 관한 화두도 함께다.
세상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갖췄는데도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유는 하나다. 다른 국가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제적 인정을 받은 나라인데도 그 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전세계를 표류한다. 또 국가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나라가 버젓이 UN이나 FIFA의 회원국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어쩌다가 이런 불합리한 체제를 갖게 됐는가에 저자는 집중한다.
그는 두 발로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한 결과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펼쳐낸다. 국가의 체제를 모두 갖추고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들, 국가가 될 수 없는 환경이지만 당당히 국가로서 국제 정치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현재의 세계지도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깊이 요동치고 있는 생생한 현장으로 안내하며 한 국가의 존폐를 결정하는 보편적 권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현재의 세계지도가 머지않아 이들 지역의 경제·문화·환경의 힘에 의해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은 흥미롭다.
조슈아 키팅 지음 |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344쪽 | 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