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질랜드 외무부 페이스북)
저신다 아던. 80년생인 이 여성은 스물 여덟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9년 만인 37세에 한 나라의 총리가 된다. 그는 총리 자리에 앉은 상황에서도 임신했고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3개월 된 딸을 안고 참석해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최악의 테러 상황에서 공감과 사랑을 보여주는 리더로 행동하며 세계에 감동을 줬다.
뉴질랜드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운 저신다 아던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해밀턴에서 태어난 저신다 아던은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란 소녀였다. 그러다 1990년대 말 노동당 당원이던 언니의 덕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두 번째 여성총리였던 헬렌 클라크를 도우며 정치를 배웠다.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잠시 방황했던 저신다 아던은 2008년 노동당 비례대표 20번으로 당선돼 정치인이 됐는데 여느 정치인들이 40년을 지나고도 못 이룰 일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뤄냈다. 소속당인 노동당 대표가 당 지지율이 여당의 절반에 그치는 부진을 면치 못한 데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하면서 대표직을 갑자기 떠안았기 때문.
■ 테러가 저신다 아던의 진면목을 드러내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 공화주의자, 여성주의자로 규정하는 저신다 아던은 우연한 기회가 만들어낸 정치인인 셈이다. 특히 제대로 정부 내 직책을 맡은 적조차 없었던 저신다 아던은 총리를 맡은 초기 경제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실속 없는 정책들의 향연이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를 무기로 내세운 ‘저신다매니아(Jacindamania)’ 층의 형성과 지난 3월 터진 최악의 테러에서 저신다 아던은 사랑과 진실된 리더십으로 뉴질랜드 뿐 아니라 전세계를 뭉클하게 했다.
우선 신속했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막아섰다. 저신다 아던은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참사를 테러로 규정하고 대응하고 나선 저신다 아던은 빠르게 희생자 전원의 장례비를 지우너하고 유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총기 규제에 대한 방침도 발빨랐다. 인구 500만명인 뉴질랜드에 150만대의 총기가 있는 점을 감안해 강력한 총기규제 정책을 도입했는데 저신다 아던은 테러 발생 하루 만에 총기단속법을 강화하고 5일만에 정부 차원에서 2300억원을 들여 민간 총기를 되사는 바이백 정책도 펼쳤다. 신속한 대응에 영국을 비롯한 이슬람권 등 세계 각계 각층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사진=뉴질랜드 외무부 페이스북)
해당 테러가 이번 공격이 무슬림 이민과 연관성이 있다는 호주 한 의원의 평가에 단호하게 ‘부끄러운 일’이라 지적하면서 테러 다음날 난민과 무슬림 공동체를 찾은 파격적 행보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무려 히잡을 쓴 차림새였다. 이 모습을 통해 그는 무작위로 퍼질 수 있는 불안과 선량한 이들에게 가해질 피해를 막아선 셈이다. 국내를 신속하게 살피고 대외적으론 단호하고 포용적 자세로 나선 리더를 욕할 이는 없었다. 뉴질랜드 국민들도 동참하며 그의 결단력에 박수를 보냈다. 이같은 모습에 더 가디언 위클리는 “공감, 사랑, 진실성에 기반한 진짜 리더십이 무엇인지 전세계에 보여줬다. 타인을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지도력이다”라고 극찬했다.
■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끌어올린 여성들의 리더
극단적 여성 우월주의, 거짓 페미니즘으로 범벅된 요즘의 세상에서 저신다 아던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여성 리더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뉴질랜드는 저신다 아던의 임신 소식으로 들썩였다. 당시 “수상이 되려면 임신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는 여성으로서 아이를 가질 권리는 있지만 나라의 미래와 경제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당대표 시절 현지 방송에서 출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출산은 여성의 권리며, 이로 인해 직업을 갖는데 어떤 불이익도 받아선 안 된다”고 했던 저신다 아던은 행동으로 일부 부정적 반응을 내놓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는 8개월 만삭의 몸으로 해외 순방 및 수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출산 직전 인터뷰를 통해 “나는 다른 여성들이 ‘나는 당신처럼 못해요’라고 말하는 걸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직면해보기 전까진 자신이 가진 진정한 능력과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말대로 저신다 아던은 출산 후 자신은 6주간 출산휴가를 가졌으며 남편이 뉴질랜드 법에 따라 18주의 출산휴가를 이행했다. 뉴질랜드 두 번째 여성 수상이자 저신다 아던의 정치적 멘토이자 롤모델이었던 헬렌 클라크는 그의 임신에 “여성들은 가족과 일의 병행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당위성을 부여했다.
사회 내 포용성과 평등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우고 있는 저신다 아던은 벼락총리에서 마니아를 둔 정치인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감정적, 순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뉴질랜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를 할까 늘 불안하다. 정치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한 순간 넘어지면 그 실수로 평생 기억될 수 있다”고 말한 바다. 그의 모든 걸음에는 여성으로서, 지도자로서 실수하지 않는 리더로서의 다짐과 각오가 담겨 있다.
(사진=포커스 리더스)
■ ‘Jacinda Ardern’ (부제: 뉴질랜드의 총리)
포커스 리더스가 내놓은 ‘Jacinda Ardern’은 한국본으로 번역되지는 않은 책이다. 원서로 판매되고 있는 이 책은 저신다 아던이 총리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를 보며 우리는 어떤 담론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또한 저신다 매니아층을 염두에 둔 듯 저신다 아던의 활동 반경을 포착한 사진들도 담겨 있다. 국내에는 여성 리더들의 책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세계 정치사에 하나의 방점을 찍은 만큼 이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여성 리더의 행보를 담은 한국판이 발간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원서 소개라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