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손석희 전 JTBC 사장이자 ‘뉴스룸’ 앵커는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언론계의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민주화 투쟁을 하며 했던 말들과 수의(囚衣)를 입은 사진은 시대를 건너뛰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JTBC를 어떻게 끌어올렸는지, 정치권이 그에게 얼마나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등등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모든 건 중요치 않다. 손석희 앵커가 다독하는 지성인이라는 점만 조명할 테니. 손석희 앵커는 책을 많이 읽는 이로 정평 나 있다. 작가와의 인터뷰만 해도 촉박한 시간에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의견을 말하는 모습은 책장을 펼쳐보지도 않은 채 엄한 질문만 던져 비난을 받은 여느 앵커와 비교된다. 미처 책을 읽지 못했을 때는 솔직하게 고백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은 봤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지점들이 있다.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었기에 가능한 발언들은 인터뷰이의 신뢰를 이끌어내고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의 장을 펼친다.
‘뉴스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앵커 브리핑만 해도 그렇다. 그는 사회의 갖은 현상에 대해 유독 작가의 말과 책 속 문장들을 언급하며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전하려 노력한다. 손석희 앵커는 취업을 포기하는 ‘취포자’에 대해 말할 때 박민규 작가의 ‘갑을 고시원 체류기’를 인용해 이 사회의 젊은이들을 걱정했다. 사드 배치 논란에는 ‘아큐정전’의 루쉰의 말이 언급됐고,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논쟁에는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을 언급하며 언어를 통한 정치권의 프레임 전쟁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국내에 지진이 일어났던 때 SNS를 뒤덮은 걱정과 안부인사들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에는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 등장했던 “당신이 편안하다면, 저도 잘 있습니다(Si vales bene est, ego valeo)”로 위로와 안부의 말을 건넸다.
다독하는 티를 팍팍 내는 손석희 앵커는 책의 추천사도 자주 쓰는 편이다. 그 중 자신의 생각과 너무 흡사해 놀랐다는 솔직한 소감으로 추천사를 채웠던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손석희 추천사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손에 들렸다.
사진=문학동네
■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개인주의자 선언’
“나는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의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는 데에 경이로움까지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러면 훗날 내게 기회가 오더라도 이런 책은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책이 그냥 그런 많은 책들 속에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손석희 추천사 中)
온라인상을 들여다 보면 손석희 앵커의 이 추천사가 책의 띠지에 적혀 있어 사게 됐다는 독자들의 후기가 무수히 많다. 분명 손석희 앵커의 후광을 입긴 했지만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읽어볼만한, 읽어서 후회하지는 않을 책이다.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은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과 신문 기고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그는 가족주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개인들이 ‘내가 너무 별난 걸까’ 하는 생각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제풀에 꺾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은 거꾸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인이 된다며 경고하면서 시대의 합리적 개인주의자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냉정하게 밝히고 있다. 때로는 직책을 벗어두고, 때로는 판사로서 그는 개인이, 시민이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과잉된 교육열과 경쟁, 여전히 공고한 학벌사회, 서열화된 행복의 기준 같은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구조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종종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오해받는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