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문학동네
“훼손된 삶을 복원하는 게 소설이다”
김숨 작가가 말하는 소설의 본질이다. 그의 소설은 이 말과 많이 닮아 있다. 해체된 가족, 불화로 가득한 사회, 입양아, 노인, 여성 등 사회의 약자계층은 물론이고 우리가 잊었던 과거까지 김숨 작가 소설에서 되살아나고 재편되고 재조명되며 우리의 무너진 일부분을 재건한다.
김수진이라는 이름으로 등단해 김숨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 중인 그다. 왜 굳이 필명을 썼는지에 대한 그의 고백은 소박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스스로에게서 겉도는 느낌을 받았고 등단 후 작품 의뢰가 들어오자 본명에서 파생된 김숨이라는 이름을 선택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로 당선되고, 이듬해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는 이후 다양한 시선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허균문학작가상(2012), 현대문학상(2013), 대산문학상(2013), 이상문학상(2015) 등을 수상했다.
■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평단이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잔혹하고 어려운 소설을 쓴다는 평을 받는 것과 달리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저 그의 책이 좋아서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산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김숨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넓이와 시선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때, 그 시점 본인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것들로 작품을 써내려간다고 알려진 김숨 작가는 때론 공포스럽고 잔혹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주변인 이야기를 쓰며 독자를 매료한다. 현실과 완연히 동떨어진 것만 같은데 읽다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김숨 작가의 매력은 여기서 나온다. 해체된 가족, 혹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 현대인에 대한 관심사부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사회에 소외된 이들과 조화롭지 못한 사회를 조명하는 그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어쩌면 그와도 닮았다. 김숨 작가는 채널예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취약한 모습이 작품 속 인물들과 많이 닿아 있다”고 고백한 바다. 그의 초기작들이 이질적 소재들과 맞닥뜨린 약한 자들의 이야기로 삶의 절망과 불안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들은 독자로 하여금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사회를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철학자 이병창도 소설집 ‘국수’의 작품 해설을 통해 “김숨 소설의 인물들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 압박 받으면서 심각한 내면적 혼란을 겪는다. 그 결과 김숨의 소설은 한편으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적인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띠게 한다. 이런 두 차원의 중첩이야말로 김숨의 소설의 독특한 매력”이라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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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되새긴 행보, 논란 불렀지만 굳건한 그의 세계
그가 낸 작품들로는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너는 너로 살고 있니’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문제가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의미있는 작업도 눈에 띈다. 그는 지난 2016년 위안부 피해자의 현재와 과거를 들여다본 장편소설 ‘한 명’, 2018년 일본 군인에 납치당해 치욕을 겪어야 했던 열다섯 소녀를 화자로 내세운 ‘흐르는 편지’를 출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엮은 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도 동시에 출간된 바다. 작품 활동 뿐 아니다. 그는 지난해 1월, 국제인문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서 일본군 위안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극단적이고 유례없는 성폭력”이라 비판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는 과거 일제 강점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행보 탓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그가 동인문학상 후보로 오른 탓이었다. 1955년 ‘사상계’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은 김동인의 문학적 유지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고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있다. 이 상은 분명 작가로서의 김동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함이지만 김동인의 친일 행적 탓에 김숨 작가가 이 상 후보로 오른 것을 두고 모욕이라 말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실제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세미나 당시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동인문학상을 거대 언론사가 주최한다는 것을 꼬집는 동시에 김숨 작가를 후보로 올린 것에 대해 “최종 후보자가 된 작가 중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크게 감명해 소설을 내고 증언집을 내기도 했던 분이다. 그분을 추천한 조선일보는 무엇인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면서 “역사의 진실규명 작업에 구체적으로 모독하는 상황”이라 꼬집기도 했다.
분분한 의견이 오갔지만 김숨 작가는 발끈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고 그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로 굳건하게 글을 써나가고 있다. 스스로 인기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그이지만 확고한 신념은 있다. 그는 채널예스와 인터뷰에서 작품이란 독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서 출발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라 말한 바다. 그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책이 잘 팔리고 인기를 얻는 작가라면, 독자로부터 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난 자유롭다. 물론 독자들이 좋아하면 더없이 좋다”고 자신만의 독보적 세계를 구축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던 바다. 꼼꼼하고 면밀하게, 인간 존재의 근원을 파헤쳐가고 있는 그의 발걸음은 어느덧 22년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