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영상자료원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지만 한국 사회는 유독 금기가 많았다. 해방 이후 점진적 민주화를 해내지 못한 한국 사회는 독재자와 군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갔고, 그 안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행해진 정권의 부도적한 행위와 과거는 언급해서는 안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그중 일부가 여전히 진행 중인 금기는 베트남 전쟁이다. 박정희가 미국에 건의해 시작된 파병은 1965년 1973년까지 8년 동안 연인원 32만명, 일시 최대 인원 5만명이 베트남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이는 추후 파병 군인들에 대우는 물론, 고엽제 피해자 문제, 베트남 현지 양민 사살 논란 등 아직까지도 풀어야 할 문제들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베트남전쟁에 대해 정지영 감독의 영화 ‘하얀전쟁’(1992)은 사실상 금기를 깨트리고 반성적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한국영화라 평가받는다. 영화는 베트남전 이후에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한기주(안성기 분)를 중심에 놓고 풀어간다. 어느 날 자신이 병장일 때 후임병이던 변진수(이경영 분)가 연락이 오면서 한기주의 기억은 1980년대와 베트남전 당시를 오가게 된다.

베트남전 마지막 전투 당시 47명이었던 소대원 중 살아남은 이는 7명. 그들 중 한명이 변진수의 등장은 한기주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잊고 싶었던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준다.

영화가 1992년에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1992년에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에 합의해 다시 외교를 시작해서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촬영 허가와 협조를 받아 현지 촬영이 가능했다.

안졍호 작가의 소설 ‘하얀전쟁’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와 원작은 다른 부분이 많다. 소설은 한기주와 주변인물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영화는 근본적으로 전쟁에 대해 묻는다. 인간에서 사회로 문제적 시선을 확장해 나가는 정지영 감독의 작품임을 다시 느끼게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베트남전쟁을 겪은 이들이 겪는 온갖 후유증과 그로 인한 고통을 놓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은 제3자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여러 논란이 있지만, 미국이 가해자로 평가받는 가운데 베트남인들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때문에 그 어느 국가의 평가도 베트남인들의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그래서 중요하다.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책은 저자의 약력에서 이미 절반의 평가를 받는다. 1969년 17살에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한 바오 닌(Bao Ninh)은 3개월간 사격 등 군사훈련을 받고 인민군 이등병으로 10사단에 배치, 바로 B3전선에 투입되었다. 첫 전투에서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하사로 진급한 그는 소대 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다.

소설은 베트남전쟁이후 주인공 끼엔은 전사자 유해발굴단의 일원으로 부대원들이 전멸당한 전선으로 이동한다. 살아남은 열 명의 전사 중 한 명인 끼엔은 그 장소에서 수많은 혼령과 귀신과 마주하면서 전쟁의 아픔을 다시 느낀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누가 군인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끼엔의 영혼은 메말라 간다. 그리고 만나는 첫 사랑. 소설은 사실 작가 바오 닌의 이야기인 셈이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살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그 공간에서 이성적이란 말은 사치에 가깝다.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경험해본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 바오닌 역시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 쓰러져야 하는 것이 전쟁이라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그 이후 인간의 삶이 어찌해야 할지는 전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문학 최초로 1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1991년 베트남 작가 협회 최고 작품상, 1995년 런던 ‘인디펜던트’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 문학상, 2011년 일본 ‘일본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