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그마치북스
연필은 어쩐지 추억의 물건이다. 어린 시절엔 곧잘 그림을 그리느라 연필을 썼고 학교 공부를 하면서 연필을 썼다. 그땐 사각사각 연필 소리보다 또깍또깍 샤프가 더 멋지고 있어보였다. 그뿐인가, 색색의 펜들이 어린 마음을 유혹하며 연필을 등한시하게 했다. 대학시절부터 연필이라곤 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연필을 쥐어주며 함께 써보니 연필의 매력이 새로이 다가왔다. 쓱쓱 종이 위에 그려지는 조금은 투박하고 수줍은 선들, 연필을 쓸 때의 특유의 느낌, 연필을 깎으며 추억을 소환하는 느낌까지도 참 좋았다. 이제 굳어버린 손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연필을 쥐었다는 것만으로도 슬그머니 행복이 밀려 왔다.
이런 생각을 이들도 한다. 9명의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라는 책을 꾸렸다. 책 표지부터 연필 끝에 분홍 지우개가 달려있는 모습으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시인, 만화가, 매거진에디터, 공간디렉터, 북에디터, 에세이스트, 작곡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등 직업도, 성별도 다른 9명의 창작자들은 어째서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연필을 쓰고 있는지를 말하며 연필 예찬론을 펼친다.
태재는 연필로 쓰는 행위 자체가 생각의 균형을 잡아준다며 치열한 창작의 시간 속에 한숨 돌릴 여유를 준다고 말한다. 재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연필과 함께 했었다면서 “떨어진 나무 비늘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연필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이 외에 연필은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주체라고, 글씨를 쓰는 게 좋아 연필로 필사하는 게 취미라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연필을 사랑하는 창작자들이 뭉쳐 연필이 영감의 도구이자 힐링의 친구라는 점을 어필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필의 새로운 쓰임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