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내면은 어떤 것일까.
나는 종종 삶에 대해 무기력하거나 혹은 냉소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위험한 무엇인가를 감지하곤 한다. 내내 신경을 잡아끄는 그런류의 사람들은 실제 위험한 순간을 표면화하기도 했으며, 가끔은 스스로의 성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에나 있을 법한 삶에 대한 냉소 혹은 삐딱한 시선은 사회생활을 하는 20대 혹은 30대에게서도 많이 포착된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치열한 고통과 전투를 통해 무릎을 꿇기도 하고, 승기를 거머쥐기도 한다. 이 치열한 내면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얼마나 성장을 할 것이며 또 어떤 진실을 발견해 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늘 계속 되어 왔다.
작가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냉소적인 사람들을 바라보던 내 시선에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마치 죽음을 따라가는 듯 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 죽음의 길 위에서 위트도, 슬픔도, 고통도 고스란히 내어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한 충격 때문일까. 죽음을 미화했다는 조소 어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김영하라는 작가를 단숨에 주목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역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감정과 동일 선상에 있다. 두 작품의 다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죽음으로 아슬아슬하게 다가가는가, 혹은 깊은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성장을 향해 가는가에 있다. 이 두 작품은 인간의 내면적 성장을 다룬다. 여전히 어려운 사람의 내면, 그 속의 치열한 고통과 성장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한 작품들이다.
■ 한 편의 로드 무비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을 기록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성장소설이라 일컬어진다. 저자 페터 한트케는 여러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한 바, 그의 책들은 연극으로 각색돼 관객의 사랑과 찬사를 받기도 했다.
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젊은 작가가 종적을 감춘 아내를 찾아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 싶지는 않으니까”라는 내용의 짧은 편지 한 통과 함께 시작되는 이 소설은 1부 ‘짧은 편지’와 2부 ‘긴 이별’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편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아내가 닷새 전까지 머물던 뉴욕으로 찾아간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라는 점, 주인공의 아내의 직업이 저자의 첫 아내와 같이 배우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저자의 삶이 깊이 반영된 자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파격과 파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 김영하라는 작가를 안겨준 작품이 바로 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이다. 책은 죽음의 미학을 매혹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비범하고 충격적 소설가의 탄생을 알렸다.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활달하고 대담한 상상력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이로 하여금 책은 판타지, 컬트, 포르노그라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타인과의 연대에 무능하여 끝없이 고독과 단절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명쾌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서늘할 정도로 무관심한 문체가 우리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