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영사)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랑방이나 동네 거목 아래 모여들던 사람들은 온라인상에 모인다. 그러고 오프라인보다 더 활발하고 과감한 주장을 펼쳐내며 논쟁을 주도하고 토론을 벌인다. 이 가운데 최근 들어 가장 뜨거운 화두이자 논란이라면 바로 법 판결이 아닐까 싶다. 어떤 가난한 이가 몇 푼 누락에 해고당한 것,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국민에 충격을 준 경제범이나 정치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강력범에 대한 판결들이 자신이 생각한 결과와 다를 때 온라인상에 분노의 불길이 솟아난다.
판사가 권력에 팔렸다는가 하면 국내 법 체계가 뭣 같아서 개정을 해야 한다는 비난, 가난해서 재벌보다 작은 죄를 지고도 처벌을 강하게 받는다는 토로성 주장들이 줄을 잇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는 대상은 다름 아닌 법봉을 든 판사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 판사 박주영은 '어떤 양형 이유'를 통해 판사도 인간이고 그런 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한다.
세상의 원망과 고통, 절망과 눈물, 죽음과 절규가 모이는 곳, 법원에서 판사로 살아간 박주영은 판사란 법정에 선 모든 이의 책망과 옹호를 감당하며 판결문을 써내려 가는 존재라 말한다. 형사 판결문에는 피도 눈물도, 형용사와 부사도 존재하기 힘들며 건조하고 딱딱하다. 그러나 이 판결문 끝에 ‘양형 이유’라는 부분이 있다.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 설시를 모두 마친 후 이런 형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판결문은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만을 추출해 일정한 법률효과를 부여할 뿐 모든 감상은 배제하는 글이지만, 그나마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판사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형사 판결문에 있는 ‘양형 이유’ 부분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 그는 판결문이라는 형식에 미처 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눈빛과 사연이 자신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모습을 되짚으며, 피고인에게 특별히 전할 말이 있거나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 때 양형 이유를 공들여 썼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형사재판을 하며 만났던 사건들, 해당 사건의 실제 판결문에 있던 양형 이유 일부뿐만 아니라 판결문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당사자들의 아픔과 판사의 번민이 담겨 있다. 가정폭력 사건, 산업재해 사건, 성추행사건, 성전환자 강간 및 부부강간 사건, 사람들의 편견으로 사회적 약자가 피고인이 된 사건 등을 통해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한편, 판사인 본인 역시도 법의 한계와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80쪽 |1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