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친구 A는 중학시절부터 함께 자란 반려견이 노쇠해 비틀거리며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집에 들어서면 대소변 잘 가리던 녀석이 여기저기 싸질러 놓은 오물이 있기 일쑤고, 가끔 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괜찮느냐 물어보면 A는 덤덤히 “이제 갈 때가 된 거지 뭐,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을 못쓴다는데 어쩌겠어”라고 말하지만 그 눈에는 슬픔이 차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이별이지만 동생 같았던 반려견이 자신보다 빠르게 늙어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 문득문득 슬픔이 찾아온다고, A는 말했다. 투덜대는 푸념이 또로록 술잔에 담기는 일이 많았고, 그는 결국 지난해 말 반려견을 보냈다. A는 어린 아이도 있으니 당분간은 반려견을 키우지 않을 거라며, 솔직히 아이가 다 자라도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슬프게 웃었다.
친구 B는 고작 2년 키운 반려견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냈다. 그의 작은 반려견은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둔 이불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소리를 내지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번도 그런 일이 없어 그저 환기시키려 열어둔 현관문 밖으로 나간 줄 알고 온 동네를 뒤졌던 B는 엉엉 울면서 “내가 미쳤지”를 반복했다. 한동안 지나가는 개도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자책에 자책을 거듭하던 B는 떠난 반려견과 같은 종의 강아지를 새로 들였다. 마음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에 “떠난 아이에게 다 못 준 사랑, 얘한테라도 줘야 죄책감이 덜어질 것 같다”고 말한 그는 애교쟁이 반려견과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다른 곳, 다른 시기에 이같은 경험을 한 A와 B가 만났을 때 이들의 대화는 내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떠나보낸 반려견에 대한 좋은 추억을 세세히 기억하고 꺼냈고, 반려동물과 함께 한 애잔하고 달콤한 일상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떠나보낸 아픔과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깊은 공감이 오갔다. 공감, 웃음, 아픔, 두려움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생경하고도 따뜻한 자리였다. 더욱이 A에게나 B에게나 그들의 반려동물은 그저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었고 함께 숨을 쉰 생명이었다는 점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세상의 이치는 이 세상 어떤 것이라도, 누구라도 떠나보낸다는 것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반려동물에게 마음을 나눠준 이들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를 잃든, 어떤 것을 떠나보내든 우리는 결국 이를 이겨내고 가슴에 묻고 추억을 회상하며 그렇게 다독이는 삶을 살아간다. 반려가족의 이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공감을 사는 잔잔한 이야기, 정우열 작가의 ‘노견일기’1, 2편도 이같은 따뜻함과 마음의 성장을 말하는 책이다.
(사진='노견일기' 1, 2권)
정우열 작가의 ‘노견일기’ 시리즈는 지난해 8월 1편이 출간됐고, 12월 2편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네이버 ‘동물공감’ 판에서 2년 여 연재중인 동명의 웹툰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1편에서 자신보다 빠르게 늙어버린 반려견과의 잔잔한 일상과 애틋한 마음을 풀어내며 큰 공감을 샀다. 두 번째 단행본을 통해서 정 작가는 보다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롯해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아릿한 마음을 조용히 쓸어내려 준다.
그가 필명으로 쓰는 올드독은 작가의 자화상을 반영해 만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를 팬들은 ‘한국의 스누피’라고 부르는데 그의 작품이 개와 관련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 작가는 흑백의 단순 명료한 펜 터치로 이야기를 그려가고 그 여백에 말 대신 온기를 채워넣는다. 구구절절한 말들이나 설명은 없지만 그 간결한 이야기들에게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과 서로가 주고받는 진심, 그 따뜻한 감성들이 꾹꾹 채워 넣어져 있다.
그는 언젠가 떠나 보내야 하는 반려견과 함께 보내는 달콤하고 발랄하고 동시에 먹먹한 일상들을 공개한다. 이 계절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마지막 계절은 아닐까, 이 여행이 마지막은 아닐까, 혹은 당장 내일 이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는 결코 불안과 불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무도 익숙해진 반려동물의 습관이나 투정, 적지 않은 세월 둘만이 쌓아온 시간들의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는 이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
이 두 반려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며 공감과 치유의 영역으로 발을 옮긴다. 굳이 동물이 아니더라도 함께 해 온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우리는 떠나 보내는 순간을 대비할 수도 없고 무뎌질 수도 없지만 적어도 위로와 치유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정 작가의 책은 효과가 있다. ‘함께 하는 삶’의 따뜻한 온기와 통찰을 통해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이들에게도, 키우지 않는 이들에게도 상실과 남겨짐이라는 공통적 숙명에 대한 다독임과 위로, 잔잔한 웃음을 전하고 있다. 500만 독자의 호평을 받고 1, 2편을 출간하는 동안 성악가 조수미, 영화감독 임순례, 배우 이영진, 노브레인 보컬인 가수 이성우 등이 너도나도 추천사를 써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