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북스힐
사진=북스힐

의도치 않게 뜻깊은 발견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우연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진짜 우연인 경우들이 있다. 사물이나 인과관계를 알지 못했고,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뜻밖에 진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과학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같은 우연으로 다이너마이트와 전자레인지가 세상에 나왔고 비아그라 역시도 원래 목적과 전혀 다른 효능을 발견하게 됐다. 과학자들은 이론적인 것을 좋아하고 기승전결, 인과관계가 뚜렷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런 순간들에 대해서만큼은 이들도 운명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라파엘 슈브리에는 ‘우연과 과학이 만난 놀라운 순간’을 통해 과학사의 ‘세렌디피티’에 주목한다. 대학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유럽 우주국 소속 로켓발사 전문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물건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를 일러주면서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쳐왔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페니실린을 개발했던 알렉산더 플레밍은 생산의 한계에 부딪혀 허덕이다가 썩은 멜론에서 대량 생산의 해법을 찾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3M에서 산업용 접착제 연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잘 붙지 않는 접착제에 10년을 매달린 스펜서 실버는 세상 사람들이 너무도 익숙히 사용하고 있는 포스트잇을 개발했다. 스위스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은 호밀에 기생하는 맥각균을 연구하다가 혈압조절과 정반대 효과를 나타내는 환각제 LSD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비아그라는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었으나 임상실험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발기부전을 겪는 남성들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저자는 이처럼 의도된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건을 통해 과학적 발견들이 이뤄지지면서 세계가 발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한다. 그리고 그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류는 현재의 문명과 기술에 도달할 운명이었을지, 또 다른 사소한 우연이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다. 우리 인생의 여러 기회와 사건들이 우리를 다른 길로 향하도록 바꾼 것처럼 우연의 과학 역시 놀라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그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